기리시탄 사적

1563년에 일본 최초의 가톨릭 신자가 된 오무라 스미타다가 다스리던 시대에는 영주에 속한 백성들도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기리시탄)였습니다.
그러나 1587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바테렌(신부) 추방령이 내려졌으며, 그 탄압은 에도시대에 더욱더 심해져 기리시탄들은 모진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고오리쿠즈레'라 불리는 잠복 기리시탄 발각 사건은 411명이 참수형을 당할 정도로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왔습니다.
시내에는 순교지와 무덤터, 감옥터 등 순교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적이 다수 남아 있습니다.
(오무라 낭만・시 HP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