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카케이시 (요리토모가 앉은 돌)
고시카케이시 (요리토모가 앉은 돌)
1180년 (지쇼 4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겐지 (미나모토노 가문) 의 부흥을 기원하기 위해서 미시마 대사를 100일에 걸쳐 참배했을 때 휴식을 취했던 돌로, 왼쪽 돌에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오른쪽 돌에는 부인인 호조 마사코가 앉았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가마쿠라 막부를 수립한 초대 정이대장군으로 매우 유명한 인물입니다.
미나모토노 요시토모의 삼남으로 태어난 요리토모는 첫 출진한 헤이지의 난에서 패하고 아버지와 큰형은 살해됩니다. 작은형도 도망 중 부상이 악화되어 목숨을 잃고, 요리토모 자신은 이즈국의 히루가코지마(현재의 시즈오카현 이즈노쿠니시)로 유배당하게 됩니다.
약 20년에 걸친 유배생활 중 이즈의 호족인 호조 도키마사의 장녀 마사코와 결혼.
1180년, 모치히토 왕의 헤이시 (다이라 가문) 토벌을 명 받아 출정하여 일단은 패하지만, 재전투를 계획하여 최종적으로 1185년 단노우라 전투에서 헤이시를 전멸하고 전국을 평정합니다.
1192년에 정이대장군으로 임명되어 사상 최초 무가 정권인 가마쿠라 막부를 수립했습니다.
이후,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막부 붕괴까지 약 700년에 걸쳐 무가에 의한 통치가 이어졌습니다.
호조 마사코는, 이즈의 나라야마에서 세력을 자랑하던 호조 도키마사의 딸로, 이즈에서 유배를 하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결혼하여 오히메, 요리이에, 오토히메, 사네토모의 이남 이녀를 두었습니다.
요리토모가 가마쿠라에 무가 정권을 수립하자 미다이도코로 (정실부인)로 불리게 되며 1199년에 요리토모가 사망하자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지만, 후계자인 아들들이 연이어 암살당했기 때문에 요리토모의 먼 친척인 구죠 요리쓰네를 4대 장군으로 영입합니다.
하지만 이 당시 요리쓰네는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실권을 차지하지 못했고 마사코가 후견인으로 장군직을 대행한 것에서 ‘비구니 장군’으로 불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