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료마
사카모토 료마는 고치의 성시에 사는 향사의 차남으로 태어나(1835년) 청년 시절 에도로 나가서 지바 도장에서 호쿠신잇토류를 배워 검사로 알려져 있으나, 분규 원년(1861년) 재빨리 다케치 한페이타(즈이잔)의 도사킨노당에 참가했다.
후에 탈번하여 가쓰 가이슈를 사사하며 해군 건설을 계획하고 조슈(야마구치 현)의 가쓰라 고고로(기도 다카요시), 사쓰마(가고시마)의 사이고 다카모리를 설득하여 게이오 2년(1866년) 삿초 두 번의 동맹 협약을 성공시키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그 삿초 동맹의 효과도 있어서 조슈 번은 조슈에 밀어닥친 막부군(도쿠가와 편)을 격파했다.
이를 기회로 막부 토벌 운동이 고조되어 료마는 이 삿초 동맹 세력에 도사 번을 더하고 이를 배경으로 하는 왕정복고를 고려해 도사 번의 참정 고토 쇼지로를 설득하여 입헌적 의회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신정부의 출현을 기약했다.
야마우치 요도(15대 번주)는 고토의 제안을 받아들여 게이오 3년(1867년) 10월 3일, 장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대정봉환을 건백하였다.
장군도 시세를 살피어 10월 14일에 정권 반환을 조정에 상주하였다.
료마는 이를 기뻐하며 신정부 창립에 분주하였으나, 11월 15일 교토 가와하라마치 오미야에서 막부 측 자객에게 습격 당해 동지 나카오카 신타로와 함께 흉인에 쓰러졌다.
료마는 해원대장, 신타로는 육원대장으로 도사 번의 유군을 만들어 그 활약이 기대되었으나, 막부 말 신구 세력 대립에 희생되었다.
이때 료마는 33세, 신타로는 30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