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세쿠라 쓰네나가의 묘 / 선교사 소텔로 기념비
하세쿠라 쓰네나가의 묘

센다이 번주 다테 마사무네에 의해 1613년 유럽으로 파견된 하세쿠라 쓰네나가는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52세에 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묘소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고묘지에도 그 중 하나가 있습니다(본당 북서쪽).
하세쿠라 쓰네나가는 센다이 번주 다테 마사무네의 명을 받들어 1613년 게이초 견구 사절로서 180여 명의 사절단을 이끌고 선교사 소텔로를 안내인으로 하여, 오시카군(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쓰키노우라를 출범, 태평양과 대서양을 횡단하여 1615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를 알현했습니다.
여기서 쓰네나가는 외교 교섭을 하였고, 본인도 세례를 받아 돈 필립보 프란시스코라는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로마를 방문하여 로마 교황을 알현하고 로마시 공민권을 부여받아 귀족 반열에 드는 등 환영을 받았으나, 그리스도교 탄압, 쇄국 정책을 펴던 일본의 국내 정세의 변화로 노비스바니아(멕시코)와의 통상, 선교사 파견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1620년에 귀국,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앙의 탑이 쓰네나가의 묘입니다(쓰네나가 묘의 소재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더불어 쓰네나가가 가지고 돌아온 물건들은 센다이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2001년 6월에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그 일부가 유네스코 기억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루이스 소텔로 기념비

오른쪽에는 쓰네나가의 안내인이었던 선교사 루이스 소텔로 기념비가 있습니다.
소텔로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태어난 프란시스코회 선교사로, 1603년에 일본으로 건너와 포교활동과 함께 어학의 재능을 살려 도쿠가와 이에야스・히데타다 등 막부의 유력자와 교섭도 하였습니다.
이윽고 다테 마사무네에게 오슈에서의 포교활동을 허가받아 1613년 하세쿠라 쓰네나가와 함께 게이초 견구 사절의 대사로서 멕시코, 유럽에 갔습니다.
1622년 포교를 금했던 나가사키에 밀입국하였으나 잡혀, 1624년에 처형되었습니다.